망각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한 다크투어리즘

  • 등록 2025.03.19 15: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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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리즘 아카데미 산수화생각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참배 행사를 모집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주주의의 가치가 다시 논란이 되는 가운데, 시민들은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역사 탐방이 아니라, 5.18이 현대사에서 갖는 중요성과 이를 기억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공유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산수화생각청은 민주 시민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민주주의의 후퇴가 가시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다시금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민주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80년 5월 17일, 국회의 침묵 속 민주주의 붕괴

 

1980년 5월 17일, 대한민국 국회는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신군부가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회는 사실상 기능을 정지당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이는 국회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으로 이어졌다.

국회는 계엄 확대를 저지하지 못했으며, 김대중을 포함한 야당 정치인들과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 국회의사당은 군 병력으로 둘러싸였고, 의원들의 정치적 활동이 제한되었으며 언론 또한 강한 검열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신군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광주는 철저히 봉쇄되었고, 언론은 이를 ‘불순분자의 폭동’으로 왜곡하며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


2024년 12월 3일, 다시 찾아온 비상계엄의 그림자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안보 위기와 정부 기능 마비를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령 선포 직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는 국회의 모든 출입구를 폐쇄하고 의원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동시에 계엄군은 국회를 포위했고, 특수부대(제707특수임무단, 제1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특임대)뿐만 아니라 기계화보병사단과 육군 헌병대 특수임무대도 배치되었다. 수도방위사령부(사령관 이진우 중장)는 국회 봉쇄를 주도했으며, 육군특수전사령부(사령관 곽종근 중장) 소속 제3공수특전여단과 국군방첩사령부(사령관 최영민 중장) 요원들도 동원되었다. 특히, 12.12 군사반란 당시 동원되었던 부대들 중 일부인 특전사(제3공수특전여단, 제1공수특전여단)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병력이 다시 투입되었다.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장갑차 등이 배치되었다. 이들 부대는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며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의 움직임을 강하게 제압했다.

여당의 대표와 일부의원, 야당 의원들은 긴급히 모여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결의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경찰과 계엄군의 출입 통제로 국회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국회 주변에 집결해 국회봉쇄에 항의하며 민주주의를 지키려하였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회 상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실시간으로 공유된 현장 영상과 게시물들은 국내외 여론을 자극했고, 국제 언론에서도 이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국회의 발빠른 대처와 온라인을 통한 조직적 대응과 거리 시위의 결합으로 인해 계엄령은 약 6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 그리고 그 이후의 왜곡

 

광주는 철저히 고립된 채 학살이 자행되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과 달리, 1980년 광주는 군부의 철저한 봉쇄 속에서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차단된 상태였다. 12.3 사태에서는 시민들이 유튜브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었지만, 1980년에는 언론과 통신이 완전히 차단되어 광주의 참상이 외부로 전해지지 못했다. 또한, 12.3 당시에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빠르게 통과되어 계엄령이 단시간 내에 해제되었지만, 1980년에는 국가기관이 철저히 군부의 통제하에 놓이며 시민들의 저항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은 신군부의 계엄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 계엄군은 비무장 시민들에게 발포했으며, 병원에서도 부상자를 끌어내어 처형하는 등 극도의 폭력을 행사했다. 광주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와 철도는 군 검문으로 차단되었으며, 모든 전화 및 언론 보도가 통제되었다. 시민들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였고, 이에 따라 자구책으로 시민군을 조직해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신군부가 강경 진압의 명분으로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신군부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폭동’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며 광주의 상황을 왜곡했고, 정부 기관과 보수 언론을 동원하여 시민들의 저항을 외부 세력의 선동으로 몰아갔다. 당시 신군부는 대중 매체를 활용해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좌경 용공 세력의 폭동'으로 규정하며 국민들의 여론을 조작했다. 이러한 왜곡된 정보는 국가기관과 군부의 공식 발표를 통해 퍼졌으며, 언론 검열로 인해 진실이 외부로 전달되지 못했다. 이후 몇십 년 동안 이러한 허위 정보는 특정 정치 세력과 극우 단체에 의해 재생산되며 확산되었고, 현재도 일부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후 몇십 년 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속적으로 왜곡되었고, 지금도 일부 극우 세력에 의해 허위 주장이 유포되고 있다.


5.18을 기억하는 민간단체들의 노력

 

다크투어리즘 아카데미 산수화생각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다. 이 단체는 9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대를 통해 역사 의식을 확산하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5.18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면서, 민주주의 정신을 후대에 전달하는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12.3 계엄 이후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러한 활동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산수화생각청의 목표는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우리 공동체가 자녀와 손자녀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의 일환으로, 5.18 광주민주묘역 참배 행사를 추진하고 있으며, 시민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역사의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서울에서 출발하는 대절버스 신청은 마감되었지만, 광주 현장에서 합류하여 조문에 동참하는 것은 가능하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은 연락처를 통해 문의하면 카카오톡을 이용해 만날 수 있는 위치와 시간을 안내받을 수 있다.

모집 개요:

  • 모집 대상: 초·중·고생 (초·중학생은 보호자 동반 필수)

  • 모집 인원: 39명 (선착순)

  • 제공 사항: 45인승 대절버스, 점심·저녁식사, 노벨문학상 수상소설 소년이 온다 무료 제공

  • 일정: 5월 18일 서울 출발 → 광주 민주묘역 참배 → 5.18 민주광장 방문 → 서울 귀경

  • 현장 합류 가능 (서울 출발 신청은 마감되었으나, 광주에서 개별 합류 가능)

  • 신청 연락처: 010-6268-6593 (원선희 단장)

 

원선희 산수화생각청 단장은 “이번 행사는 단순한 역사 탐방이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5.18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민주주의의 중요한 전환점임을 알리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공동체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며, 이번 행사가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마음 아픈 역사를 기억할 책임이 있다.

편집국 기자 koreaoped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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