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8일 오후 6시 8분(현지시각),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역사적인 소식을 전했다. 교황 선출을 알리는 이 상징적 연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이 결정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날 네 번째 투표에서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레오 14세라는 교황명을 선택하며 새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그는 다양한 국제 경험과 중도적 리더십은 교황직 수행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중 앞에 첫 인사, “하베무스 파팜”
선출 약 1시간 뒤, 프레보스트 교황은 전통에 따라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만 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광장은 그가 발코니에 등장하자 환호성으로 가득 찼고, 추기경단의 수석 부제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고대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우리에게 교황이 계십니다)”을 선포했다. 군중은 각자의 국기를 흔들며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을 기념했고, 이 장면은 전 세계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날의 장면은 가톨릭 역사 속 또 하나의 장대한 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콘클라베 투표와 선출 과정
이번 콘클라베에는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 133명이 참여해 폐쇄된 공간인 시스티나 성당에서 비밀 투표를 진행했다. 전날 첫 투표는 무산되었고, 이어진 5월 8일 오전 두 차례, 오후 한 차례 투표 끝에 네 번째 투표에서 교황이 확정되었다. 이날 오전 11시 51분경 검은 연기가 성당 굴뚝에서 피어오르며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나타냈으나, 불과 몇 시간 후 흰 연기가 광장 하늘로 피어오르면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열광시켰다. 평화방송에 따르면,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이날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획득하며 교황으로 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사목 활동과 통합적 리더십
프레보스트 교황은 미국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목 활동 중심은 페루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 페루 북부 피우라 지역의 촐루카나스 선교지에서 활동하며 첫 선교 경험을 쌓은 그는, 이후 1988년부터 1998년까지 트루히요에서 아우구스티노회 지원자 양성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봉사했다. 이 시기 그는 트루히요 대교구의 교회법원장을 맡았고, 신학교 교수로서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그의 사목은 단순한 목회 활동을 넘어 교육과 조직 운영 능력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
2014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페루 치클라요 교구의 사도적 행정관으로 임명했으며, 이듬해에는 정식으로 교구장 주교로 서임되었다. 2015년 그는 페루 시민권을 취득하여, 자신이 봉사한 땅과의 영적·사회적 유대를 공식화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의 현장 경험은 그를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맥락과 문제에 정통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러한 사목적 기반 위에서, 프레보스트 교황은 페루 주교회의 내에서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는 해방신학에 기반한 진보적 세력과 보수적 색채가 강한 오푸스 데이 계열 사이에서 중립적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며, 이념적 대립보다는 교회의 일치와 소통을 강조해왔다. 다양한 정치·사회적 입장을 아우르는 그의 포용적 리더십은 라틴아메리카 전체 교회 내에서 귀감이 되었다.
특히 그는 교회 내 형제애, 사회정의, 교육, 젊은 세대의 영성 형성 등에 높은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이는 사목 활동의 일관된 주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관심은 교구 차원을 넘어 전 세계 교회 정책 논의에 반영되었고, 최근 열린 추기경 전체회의에서도 이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한 심도 깊은 논의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황청 주요 직책과 국제적 위상
2023년 1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프레보스트를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 직책은 전 세계 라틴 예법에 따른 주교 임명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교회 내 인사 행정을 총괄하는 요직이다. 그는 또한 라틴아메리카주교회의(CELAM)의 위원장을 겸직하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교회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2023년 9월 30일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2025년 2월 6일에는 교황청 내 위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추기경 주교로 승격되어, 로마 교외의 알바노 교구를 맡게 되었다.
세계적 성직자의 역량과 상징성
프레보스트 교황은 단지 미국인 출신 교황이라는 점에서의 상징성을 넘어서, 실제로 전 세계 교회를 경험한 보기 드문 성직자다. 미국의 구조화된 사목 시스템, 페루에서의 풀뿌리 선교와 교육, 그리고 교황청 행정의 중심에서 축적한 통합적 리더십은 그가 단순한 중재자가 아닌 글로벌 교회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그는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는 소통에도 강점을 보인다.
향후 과제와 기대
레오 14세의 즉위는 단순한 인사 변화 그 이상을 의미한다. 전통과 개혁, 지역성과 보편성 사이의 균형을 꾀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그의 리더십은 가톨릭 교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도전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신앙의 위축 현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성직자 성범죄에 대한 투명하고 단호한 대응, 빈곤과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 정립 또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의 첫 공식 메시지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지, 또 그의 교황직이 어떤 철학과 우선순위 위에 세워질 것인지를 가늠할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프레보스트 교황, 곧 레오 14세의 첫 일성과 그에 따른 정책 변화는 가톨릭 공동체를 넘어 국제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레오 14세의 시대는 이제 막 막을 올렸으며, 가톨릭 교회는 그의 포용적이면서도 결단력 있는 리더십 아래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