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결제’라는 익숙한 소비 방식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원하는 콘텐츠, 제품, 서비스를 자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구독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며, 한국도 이 흐름에 발맞춰 시장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 유통 및 쇼핑 플랫폼, 생활 서비스 산업, 자동차 및 가전 산업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구독 기반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 일회성 구매 구조를 점차 대체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구독경제 시장은 2016년 25조 9,000억 원에서 2020년 40조 1,000억 원으로 약 54.8% 성장했으며, 2025년에는 10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0년 사이 약 4배 가까이 확대되는 수준으로, 구독 기반 소비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구조적 소비문화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 시장도 유사한 추세를 보인다.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는 글로벌 구독경제 시장이 2015년 4,200억 달러(약 501조 원)에서 2020년 5,300억 달러(약 632조 원)로 확대됐다고 분석했으며, 글로벌 통계업체 Statista는 2025년까지 1,86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구독경제 환경 속에서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독 서비스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시 실태조사: 소비자 10명 중 9명은 구독 서비스 이용 중
서울시가 2024년 12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국의 20~50대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구독서비스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5.9%가 하나 이상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 중이며, 월평균 지출액은 40,530원에 달했다. 주요 구독 서비스로는 OTT(온라인 동영상), 쇼핑 멤버십, 음악 스트리밍 등이 포함됐다.
특히 30대(45,148원)와 20대(44,428원)의 지출이 가장 높았으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구독 기반의 콘텐츠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령대 | 월평균 지출액(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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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 44,428 |
30대 | 45,148 |
40대 | 38,268 |
50대 | 30,014 |
해당 표는 각 연령대별 월평균 구독 서비스 지출액을 보여준다. 2030은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 익숙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에 따라 지출액도 높게 나타난다. 반면, 4050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액을 지출하며 세대 간 소비 형태의 차이를 보여준다.
인기 있는 구독 서비스: OTT, 쇼핑, 음악 순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독 서비스는 OTT(90.1%)였으며, 그 뒤를 이어 쇼핑 멤버십(83.8%)과 음악 스트리밍(73.4%)이 각각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특히 OTT와 쇼핑 멤버십은 2개 이상의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하는 비율도 높았다.
무료 체험 종료 후 유료 전환으로 자동 결제가 이뤄진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56%에 달했다. 이 중 48.9%는 사전 안내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선호하는 안내 방식으로는 문자(33.2%)와 중복안내(30.9%)가 꼽혔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58.4%는 구독 서비스 해지 과정에서 불편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주요 이유로는 해지 메뉴를 찾기 어려움(52.4%), 절차의 복잡함(26.5%) 등이 지적되었으며, 이는 구독 유지 유도를 위한 비합리적 설계가 소비자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크패턴 실태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가 OTT, 쇼핑, 배달, 승차, 음악 스트리밍 등 5개 분야의 13개 주요 구독 서비스를 대상으로 해지 절차 내 다크패턴 적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무려 92.3%가 반복간섭을, 84.6%가 취소·탈퇴 방해를, 69.2%가 소비자 오인유도를 유발하는 시각 설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다크패턴은 2024년 2월부터 시행된 개정 전자상거래법 제21조의2 제1항에 따라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다. 법령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온라인 인터페이스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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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계층구조(제3호): 특정 옵션(예: 유지하기)을 강조하는 크기, 색상, 위치 등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하는 설계. 예: ‘해지’ 버튼은 희미하게, ‘유지하기’는 선명하게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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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탈퇴 방해(제4호): 가입은 간단하지만 해지는 복잡하게 설계하여 소비자가 쉽게 해지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 예: 해지하려면 불필요한 절차나 설문 참여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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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간섭(제5호): 이용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동의를 반복 요청하거나 포기를 유도하는 방식. 예: 광고 수신 동의를 여러 단계에 걸쳐 반복 요청
이러한 방식은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을 방해하며,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할 경우 최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실제로 조사 대상 다수의 서비스에서 해지 버튼을 화면 구석에 배치하거나, 시각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는 방식이 확인됐다. 해지 절차를 2~3단계 이상 복잡하게 설계하거나, 반복적인 확인을 유도하는 사례도 다수 존재했다.
서울시, 위법 소지 있는 사업자에 시정 요구 예고
서울시는 해당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했거나 위반 가능성이 있는 사업자에게 시정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다. 특히 다크패턴 설계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과태료 부과 등 행정조치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명선 서울시 공정경제과장은 “구독경제가 일상화됨에 따라 해지 과정에서의 다크패턴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소비자 권익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소비 유형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시민이 안심하고 구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