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의 선거 보도 관행과 법적 기반, 왜 이렇게 다를까
선거철마다 미국 유력 언론들이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 선언을 내놓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매체들은 선거 직전 사설을 통해 공개적으로 후보 지지를 밝히고,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선택을 제안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같은 행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처럼 양국의 언론사 선거 관여에 대한 법적 판단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국: 공정성 중시, 후보 지지 ‘위법’ 소지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언론기관에 명백한 공정보도의무를 부과한다. 공직선거법 제8조(언론기관의 공정보도 등)는 "방송·신문·통신·잡지 기타 간행물을 이용하여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후보자의 정견 기타사항에 관하여 보도·논평을 하는 경우에는 공정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언론사는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제93조(선거운동의 금지)는 선거기간 중이 아닌 경우에도 특정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내용의 광고·게시물 등을 금지하며, 언론매체를 통한 간접적 선거운동도 제한 대상으로 삼고 있다.
202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뉴스토마토의 후보자 지지선언 가능 여부에 대해 "언론기관의 공정성이 전제된 공직선거법 규정 취지에 반한다"고 회답하며, 언론사의 지지 또는 지지 불가 선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2024년 초에는 공정보도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23개 인터넷언론사가 적발됐다. 특정 후보의 자서전을 칼럼처럼 보도하거나, 정당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반복 게재한 경우 등이 포함됐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인 개인의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일정한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2016년 위헌 결정(헌재 2013헌가19) 이후, 언론인이 언론 매체를 통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가능해졌다. 그러나 언론사 조직 차원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여전히 제한된다. 헌재는 "언론매체를 통한 보도·논평 행위는 공직선거법 제93조 등 별도 규정으로 충분히 규제 가능하다"며 기관 차원의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정치 표현
반면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강력히 보호한다. 1791년 제정된 이 조항은 "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언론사의 정치적 표현을 광범위하게 보호한다.
대표적 판례로는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New York Times Co. v. Sullivan) 사건이 있다.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은 실제 악의(actual malice)가 없는 한 보호받는다"고 판시하면서 언론의 정치적 표현을 강력히 옹호했다. 또한 1974년 마이애미 헤럴드 사건(Miami Herald Publishing Co. v. Tornillo)에서는, 플로리다 주의 '응답권' 법률이 신문의 편집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판례는 언론사의 편집권과 정치적 선택 표현의 자유를 헌법적으로 보장한 전환점이 되었다. 방송매체에 대해서는 '평등시간규정(Equal Time Provision)'이 적용되어 후보자 간 형평성을 요구하지만, 신문이나 온라인 언론은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언론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
양국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언론이 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은 언론을 ‘공정한 중계자’로 간주하며, 법적으로도 그러한 역할을 강제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언론이 민주주의 담론의 주체이자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자라고 본다.
규제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중앙선관위,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등 공적 기관들이 언론 보도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반면, 미국은 언론의 자율 규제에 더 의존한다. 정부는 언론 보도에 개입하지 않으며, 독자와 시장이 언론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구조다.
변화하는 환경, 고정된 기준?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SNS의 확산은 언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블로그, 유튜브, 1인 미디어 등이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면서, 전통 언론만 공정보도를 강제하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따라 2023년에는 SNS 게시물도 선거운동으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었으며, 이는 표현의 자유와 규제 사이의 긴장관계를 더 부각시키고 있다.
본지는 2022년 뉴스토마토의 특정 후보자 지지선언 가능 여부에 대한 중앙선관위의 기존 판단에 대해, 당시와 비교해 입장에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고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재질의를 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공직선거법에 의해 제한된다는"는 입장을 유지하였다. 또한 "관련 판단은 개별 사안의 맥락과 보도 형식, 선거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관위는 또한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도 고려되며, 이와 관련된 별도의 세부 가이드라인은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제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즉, 언론사의 특정 후보 지지 여부는 보도의 형식과 맥락, 선거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될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기준 없는 판단이 언론사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특히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사안별로 판단하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언론 내부에 자기검열을 유도할 수 있으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향후 정책적 대안으로서 공영방송을 제외한 민간 언론사의 경우 특정 후보자 지지 여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독자나 시청자가 보도의 성격을 분명히 인식하고,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판단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언론의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정보 수용자의 판단권을 강화하고 투명한 여론 형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제안이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자칫 언론사에 '입장 표명'을 강요하거나,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질 경우, 오히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병존한다.
결론
한국과 미국의 언론사 후보자 지지 행위에 대한 법적 접근은 각국이 중시하는 헌법적 가치—한국의 공정성, 미국의 표현의 자유—에 기반한 차이에서 출발한다. 한국은 공직선거법 제8조와 제93조 등을 통해 언론기관의 공정보도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언론사의 특정 후보 지지 행위를 제한 가능한 대상으로 판단해 왔다. 다만, 선관위는 현재까지 구체적인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사안을 종합적으로 심의하여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사안별(case-by-case) 판단 구조는 언론사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동반된다.
반면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를 통해 언론의 정치적 표현을 광범위하게 보호하며,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이나 마이애미 헤럴드 판결 등은 언론사의 편집권과 후보 지지 표현을 헌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방송에 한정된 평등시간규정 외에는 인쇄매체나 디지털 매체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언론의 자율적 판단에 위임되는 구조다.
이와 같은 차이는 언론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은 언론을 중립적 정보 제공자로 상정하고 강한 외부 규제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반면, 미국은 언론을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주체로 이해하며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한국에서도 제도적 재검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2025년 본지가 진행한 중앙선관위 재질의를 통해 이러한 현실이 다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공영방송을 제외한 민간 언론사에 한해 후보 지지 입장을 명시하는 것이 유권자에게 보도의 성격을 명확히 인식시키고, 실질적인 판단에 도움이 되는 방향일 수 있다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는 정보 수용자의 판단권을 강화하면서도 여론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 표명이 강제되거나 제도화될 경우, 오히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향후 논의는 표현의 자유, 공정보도의무, 유권자의 알 권리 간의 균형을 전제로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하며,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규범 정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