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의장, "형벌 불평등 해소와 벌금제 개혁 필요"

 

 

우원식 국회의장은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발장은행 1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에 참석하여, 경제적 격차로 인해 법적 처벌이 불균형하게 적용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형사사법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벌금형이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불균형적으로 가혹하게 적용되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발장은행은 2015년 6월 인권연대의 주도로 설립된 시민사회단체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 교정시설에 수감되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단체는 무이자 벌금 대출을 통해 벌금형이 빈곤층에게 실질적인 징역형으로 작용하는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상환이 어려운 경우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면제하는 정책도 운영하고 있다. 단체명은 프랑스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Jean Valjean)에서 유래하였으며, 경제적 곤궁으로 인해 범죄자가 되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취지를 반영한다.

 

우 의장은 토론회에서 환형유치(벌금을 납부하지 못한 경우 노역으로 대체되는 형벌 제도) 인원이 2022년 약 2만 6천 명에서 2023년 5만 7천여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한 점을 언급하며, 경제적 양극화가 취약계층의 법적 보호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계형 범죄로 인해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납부 능력이 없어 구금되는 현실은 ‘민생이 무너지면 인권도 붕괴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형사사법 체계에서 벌금 제도를 보다 형평성 있게 조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소득 및 재산 수준에 비례하는 벌금 부과, 벌금의 분할 납부 허용, 벌금형을 사회봉사로 대체하는 방안 등의 제도적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등이 참석하여, 벌금 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장발장은행의 최근 활동 및 대출 현황

 

2025년 1월 20일, 장발장은행은 제124차 대출 심사를 통해 벌금 미납으로 수감 위기에 처한 8명의 시민에게 총 1,786만 원을 대출하였다. 대출 대상자는 경기, 경북, 인천,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였으며, 개인당 100만 원에서 300만 원의 대출을 지원받았다. 장발장은행의 대출은 신용조회 없이, 무담보, 무이자로 진행되며, 2015년 이후 현재까지 1,452명의 시민에게 총 25억 156만 5천 원의 벌금을 지원한 바 있다.

 

한편, 장발장은행은 ‘빈곤이 범죄의 원인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체는 정부나 기업의 재정적 지원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운영되며, 법적·경제적 취약계층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장발장은행은 향후 소득·재산 비례 벌금제(일수벌금제)의 도입, 구금시설 내 노역 대신 사회봉사 활동으로의 대체 등 근본적인 벌금제 개혁이 이루어져 더 이상 대출이 필요 없는 날이 오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의 소득연동 벌금 제도 사례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벌금 제도의 개선 방향은 이미 해외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형사사법 제도와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핀란드는 일수벌금제(day-fine system)를 도입하여 개인의 일일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여건에 따라 형벌 부담이 조정되며, 실제로 과속 운전을 한 억만장자 기업인이 10만 유로(약 1억 4천만 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도 있다.

 

독일 또한 핀란드와 유사한 시스템을 운영하며, 피고인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여 벌금형을 산정한다. 이러한 방식은 저소득층이 벌금형으로 인해 과도한 경제적 압박을 받지 않도록 하면서도, 고소득층에게도 실질적인 형사적 제재 효과를 갖도록 설계되었다.

 

스위스 역시 소득을 고려한 벌금 부과 체계를 운영하며, 특히 교통법규 위반과 같은 사안에서 고소득자가 더 높은 벌금을 부담하도록 조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에서는 운전자가 제한 속도를 초과할 경우, 개인의 소득에 따라 벌금이 책정된다. 2010년에는 한 고소득자가 시속 85km 구간에서 137km로 주행한 혐의로 29만 스위스 프랑(약 4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있다. 이처럼 소득 기반 벌금 제도는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하여 법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해외 사례를 고려할 때, 한국에서도 벌금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형사사법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는 소득 비례 벌금제 도입을 포함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전환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 및 학계와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이러한 논의가 더욱 심화되고, 실질적인 제도 개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