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펌프 지원, ‘온난 지역’부터 가지만…지방 예산 공백이 일정 흔든다

연말 발표-예산 시차, 공기-물 방식의 수요-경제성 검증 과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히트펌프 보급을 열에너지 탈탄소 전환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지만, 현장에선 중앙-지방 예산 편성 시차와 지자체 준비 부족이 시범사업 일정과 수요를 동시에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경남·전남·제주 등 온난 지역을 중심으로 지원을 우선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나, 연말 발표로 다수 지자체의 내년도 본예산이 이미 통과됐거나 통과 직전이어서 지방비 반영이 어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급 로드맵-온난 지역 우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관계부처 합동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 방안’을 통해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과 온실가스 518만톤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방안은 경남-전남-제주 등 온난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도시가스 미보급 지역과 태양광 설치 단독주택, 사회복지시설, 농업용 시설재배 등으로 보급 대상을 넓히고,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는 제도 개선과 전기요금제 보완, 공동주택 적용을 위한 기준 정비 등을 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 예산 시차-5월 착수 불투명

 

다만 내년도 현장 집행을 좌우할 ‘사업 설계-예산-집행’의 연결고리는 아직 느슨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지원사업은 한국에너지공단을 통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되는 설치비는 1,400만원 수준으로 추정되며 분담률은 정부 40%, 지자체 30%, 개인 30%가 기본 구상으로 거론되지만, 일부 지자체는 재정 여력에 따라 지자체 부담을 30% 이상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원사업 개시는 5월 전후가 거론되지만, 취재원에 따르면 12월 말 지자체 대상 사업 설명회가 예정돼 있어 지방 예산 반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의 재정·의사결정 구조상 이 같은 시차는 곧바로 일정 지연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 예산은 확정됐더라도 지자체까지 공문이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남과 밀양시 등 일부 지역은 관련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지역의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 거론된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예상하는 5월 시범 착수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직 대응의 미비도 변수로 꼽힌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출범 이후 열에너지 산업의 효율화와 탈탄소 전환을 총괄하는 ‘열산업혁신과’를 신설했다고 밝혔지만,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는 이에 상응하는 전담 조직과 역할 분담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 설계가 중앙에서 먼저 제시되는 방식일수록 지자체 내부의 예산·기술 검토, 조달·시공 관리 체계 구축, 민원 대응 기준 정립이 뒤따라야 하는데, 현재는 지자체별로 조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개인 부담과 난방 중심 설계-수요 좌우

 

수요 측면에서도 ‘개인 부담 30%’는 보급 속도를 제약할 핵심 변수로 거론된다. 예상되는 설치비를 1,400만원으로 볼 때 개인 부담은 약 420만원으로, 가구 입장에선 단기간에 투입해야 하는 목돈이라는 점이 부담을 키운다. 특히 난방 설비 교체가 당장 필수 수요로 체감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비용 대비 효용 판단이 보수적으로 작동해, 신청 수요가 정부 기대치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도 주택용 누진제 적용으로 운전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언급하며, 공기열 히트펌프에 별도의 요금 선택을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히트펌프 기술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정책 설계의 ‘현지 적합성’과 ‘수요 확장성’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정부와 업계가 가정용 보급 모델로 검토하는 것은 공기-물 방식이다. 외기를 이용해 축적된 열을 물탱크를 두고 온수와 바닥난방을 공급하는 구조로, 기후환경부 관계자는 ‘보일러 대체형’ 설계로 연중 온수 사용을 전제로 한다고 설명한다. 냉방까지 포함한 냉난방 겸용이 아니라 난방 중심 장비라는 점이, 보급 대상과 기대 수요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일본·미국 등에서 확산된 공기-공기 방식은 여름 냉방과 겨울 난방을 한 기기로 제공해 활용 범위가 넓다는 평가가 있다. 다만 기후환경부는 국내 주거가 온돌형 바닥난방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해 공기-물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보급 확대와 탄소 감축을 함께 달성하려면 주거 유형과 사용 패턴을 반영한 기술 선택지와 제도 설계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시범사업 성패, 지방 집행력과 요금-금융 보완에 달렸다

 

결국 이번 시범사업의 성패는 ‘중앙의 목표’가 ‘지방의 집행 능력’과 ‘가구의 경제성 판단’으로 번역되는 과정에 달려 있다. 연말 발표-지방 예산 확정이라는 구조적 시차를 줄이는 사전 협의와 공문 시행의 속도, 지자체 전담 조직과 표준 집행 지침 마련, 개인 부담 완화를 위한 금융·요금제 보완이 동시에 작동해야 사업이 계획된 시점에 출발할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열에너지 전기화·탈탄소화의 청사진이 현장에서 실효성을 가지려면, 기술 선택의 ‘온돌 적합성’뿐 아니라 수요·재정·행정의 현실 제약을 먼저 좁히는 정책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