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군사적 대결을 넘어, 전쟁을 어떤 언어로 설명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란전을 비판하며 전쟁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흐름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외교 비판이 아니라 자신의 전쟁 수행에 대한 정치적 도전으로 받아쳤다. 이번 장면의 핵심은 교황과 대통령의 개인적 불화가 아니다. 백악관이 전쟁을 도덕과 문명, 신앙의 언어로 포장하는 방식과, 그 언어가 종교의 경계를 넘어설 때 이를 막아서려는 바티칸의 충돌이 본질에 가깝다.
교황이 겨냥한 전쟁의 종교화
레오 14세는 3월 말부터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의 기도를 하느님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경고했고, 4월 들어서는 이란 전체 인구를 향한 위협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의 광기와 전능감의 망상을 멈추라고 촉구하며, 하느님의 이름이 죽음의 담론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평화 호소를 넘어, 전쟁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은 발언이었다.
이 문제의식은 미국 행정부 내부에서 반복된 종교적 수사와 맞물린다. 국방장관 헤그세스는 이란 지도부를 종교적 광신도로 규정하고 시편 144편을 인용해 전쟁과 승리를 설명했으며, 이란의 핵무장을 종교적 아마겟돈과 연결해 말했다. 백악관 주변에서는 이란전이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식의 언어가 반복됐고, 전쟁은 점차 지정학적 충돌을 넘어 문명적 사명처럼 포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헤그세스가 과거 저서에서 십자군 전쟁를 전면에 내세우고 십자군을 긍정적으로 다뤄온 점까지 겹치면서, 이번 전쟁 서사는 적을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성전처럼 포장했던 십자군식 상상력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트럼프의 역공과 상징 정치
교황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자 트럼프의 대응도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는 교황을 향해 범죄에 약하고 외교에도 형편없다고 공격했고, 정치인이 아니라 교황 역할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이란을 향한 자신의 강경 노선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분명했고, 교황의 발언은 평화 호소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에 대한 공개 반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이 반응은 곧 상징 정치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에 자신을 예수상에 가까운 치유자로 형상화한 AI 이미지를 게시했다가 논란 끝에 해명했다. 그가 이를 의사 이미지라고 설명했더라도, 교황과 충돌한 직후 자신을 초월적 구원자에 가까운 도상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전쟁을 둘러싼 종교 프레임이 수사를 넘어 정치적 퍼포먼스로 확장된 것이다.
이란전을 떠받치는 미국의 종교 정치
미국에서 기독교는 여전히 다수 종교이고, 가톨릭도 전국 선거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조사에서 미국 성인 인구의 기독교인은 60퍼센트대 초반, 가톨릭은 20퍼센트 안팎으로 집계된다. 트럼프 정치의 핵심 기반 역시 백인 복음주의 진영과 보수적 기독교 유권자층에 깊이 기대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이란전을 신앙과 문명 수호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우발적 수사가 아니라 지지 기반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 가깝다. 다만 이 같은 종교적 전쟁 수사에 대해서도 가톨릭과 개신교 내부에서 반발이 확산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더 주목할 대목은 이런 흐름이 미국 헌정 원리와도 부딪힌다는 점이다. 미국 헌법에는 정교분리라는 표현이 직접 적혀 있지는 않지만, 수정헌법 1조의 국교 금지와 종교의 자유 조항은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 언어를 전쟁 동원에 앞세우는 데 제약의 원리로 작동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충돌은 단순한 설전이 아니라, 미국 보수정치가 종교를 어디까지 국가 권력의 언어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둘러싼 시험대이기도 하다.
결국 쟁점은 교황과 트럼프 중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느냐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미국 행정부가 이란전을 설명하는 방식이 외교적 출구를 넓히고 있는지, 아니면 전쟁을 선악의 대결로 굳혀 협상 가능성을 닫고 있는지에 있다. 상대를 타협 가능한 국가가 아니라 악 그 자체로 고정하는 순간, 외교는 후퇴가 되고 전쟁은 사명이 된다. 미국의 종교 정치 구조와 백악관의 전쟁 수사가 결합할수록 더 위험한 것은 군사 충돌 자체만이 아니라, 그 전쟁을 극단주의적 성전처럼 포장하는 언어일 수 있다. 레오 14세의 경고는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