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공식 입장
2025년 3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박선영)는 해외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공식 인정했다. 이 과정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약 반세기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국가의 구조적 책임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위원회는 수많은 입양 사례를 분석하고 신청인의 진술, 행정 문서, 과거 정책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제도적·행정적 문제들을 지적했다: 허위 고아호적 생성, 아동 신원 바꿔치기, 친권자의 동의 없는 입양, 양부모 자격 검증의 형식화, 그리고 입양의 경제적 동기에 기반한 운영 방식 등이다.
이에 따라 박선영 위원장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이후 시작된 해외입양이 장기화되면서, 수많은 아동이 국가 시스템의 허점 속에서 신원과 권리를 박탈당한 채 외국으로 보내졌다”며, “이 과정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닌, 국가가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체계적으로 침해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신속성과 효율성 지향의 문화가 입양 절차의 졸속화를 낳았으며, 그 대가는 가장 취약한 아동들에게 전가되었다”고 지적하며 국가의 구조적 책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입양 정책의 시대적 배경과 법제도의 한계
해외입양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시기, 한국은 전쟁 피해 복구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복지 제도의 미비, 그리고 미혼모와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낙인의 삼중 구조 속에 있었다. 전쟁고아의 수는 급증했으나, 국내 보호체계는 극히 부족했고,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외입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동을 보호의 주체로 인식하기보다는 행정적 효율성과 사회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제도적으로 고착되었다. 한 보건사회부 공무원은 "입양이 워낙 많다 보니 하루에 몇 천 건씩 서류를 처리해야 했다"고 회고했으며, 이는 행정 관행이 개별 아동의 권리나 복지보다는 물량 중심으로 기울어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1년 제정된 ‘고아입양특례법’은 해외입양을 제도화하였으나, 기관의 감독, 수수료 제한, 신원보호에 관한 규정은 부재하거나 미흡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특히 입양알선기관들이 양부모에게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입양 수수료를 수취한 점에 주목했다. 이 기부금은 단순한 행정비용을 넘어서 입양을 시장 기반 구조로 전환시키는 경제적 동인이 되었으며, 기관들은 이를 통해 보육원, 산부인과, 미혼모 보호소 등 아동 공급망을 유지하고 확장했다. 결과적으로 아동은 복지의 주체가 아닌 수요-공급 체계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장애 아동은 낮은 금액으로 입양되거나, 신원이 조작되어 해외로 송출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입양을 통해 아동이 실질적으로 ‘거래’되는 구조로 이어졌으며, 국제적으로도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입양아동은 성장 후 자신의 출생 정보나 친가족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행정 기록의 누락, 위조, 고의적 은폐 등이 겹치면서 성인이 된 입양인들은 정체성의 단절과 심리적 외상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소외와 자존감 손상은 장기적 인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위원회는 이 같은 피해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닌, 구조화된 정책과 행정 시스템에 기인한 것임을 명확히 하며, 국가가 이를 책임지고 회복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정책 권고
진실화해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권고를 정부에 제시했다.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 및 입장 발표 △피해자 실태조사 및 명예회복 조치 마련 △입양 관련 기록 및 정보 접근성 보장 △입양인과 생가족 간 상봉 및 신원회복을 위한 국가 지원 체계 구축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포함한 입양제도 국제화 및 투명화 등이 포함된다. 위원회는 이러한 권고가 단순한 과거 청산이 아니라, 국가 복지 및 인권 정책의 미래지향적 전환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진실규명은 고통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자, 인권과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새로운 정책적 기준을 정립하는 계기”라고 강조했다. “해외입양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후속 실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전 세계에 흩어진 입양인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및 협력 강화를 통해, 교육·고용·복지 통합 등의 실질적 지원 방안 마련에 진화위가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해외입양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조명한 첫 번째 공식적 진상규명으로, 아동 인권과 복지정책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과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는 피해자 중심의 회복적 정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 사과와 배상 체계를 마련하고, 입양인의 신원 회복을 위한 행정적·법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입양 관련 기록의 영구 보존과 공개 원칙을 법제화하고, 입양절차 전반에 대한 공공적 감독을 강화하는 제도 개편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해외입양인을 위한 교육, 취업, 심리치료 등 다차원적 지원 체계를 갖추는 한편, 향후 입양정책의 방향성을 인권 중심의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전환하는 것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