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넘게 한국 영화계를 지켜온 ‘국민배우’ 안성기 씨가 1월 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30일 자택에서 식사하던 중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며 심정지 상태로 이송됐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영화계는 ‘만다라’, ‘투캅스’, ‘실미도’ 등 한국 영화사의 굵직한 작품을 남긴 거장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유명인의 비보를 넘어, 고령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기도 폐쇄’의 위험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질식 사고는 발생 빈도 자체보다도, 몇 분의 지연이 곧바로 치명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중보건적 성격이 강하다. 식사 장면은 일상에 가깝지만, 고령층과 중증 질환자에게는 생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고위험 상황이 될 수 있다.
‘식사 중’ 기도 폐쇄가 치명성
삼키는 동작은 기도와 식도를 순간적으로 분리하는 정교한 근육 운동이며, 고령층에서는 근력 저하와 감각 저하로 조절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암 환자는 영양 상태 악화와 체중 감소로 전신 근육이 빠지는 과정에서 인후두 주변 근육도 약해질 수 있고, 항암·방사선 치료가 누적되면 삼킴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통증 조절이나 진정 목적의 약물 사용이 겹치면 의식과 기침 반사가 둔화돼,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도 배출 반응이 약해질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음식물이 기도로 잘못 들어가거나 기도가 막히면 산소 공급이 급격히 떨어지며 의식 소실과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한 기도 폐쇄는 숨을 쉬지 못하고 말이 나오지 않으며 기침이 약해지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 단계에서는 ‘스스로 해결’이 어렵고 주변인의 개입이 생존 가능성을 좌우한다.
안성기 씨가 혈액암으로 투병해왔다는 사실은 암·쇠약이 삼킴 기능을 떨어뜨려 평범한 식사도 치명적 사고로 번질 수 있음을 환기한다. 다만 개인의 구체적 의학 경과를 단정할 수는 없으며, 이번 사건의 핵심 교훈은 고위험군의 식사 안전관리와 현장 응급대응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위험은 개인 사례에 그치지 않고, 구급 출동 통계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통계가 보여주는 기도 폐쇄의 규모
기도 폐쇄는 흔히 ‘특이한 사고’로 오해되지만, 응급 현장에서는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소방청 구급통계에 따르면 2019-2023년 떡·음식물 기도 막힘으로 119가 출동한 건수는 1,290건, 이송인원은 1,104명이며, 이 가운데 심정지는 415명이었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이 921명(83.4%)으로 집계됐다. 서울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기도 폐쇄로 숨진 사례를 분석했을 때, 떡이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 데이터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사고의 위험은 ‘특정 음식’과 결합해질 때 높아지며, 사고의 상당수는 60대 이상 고령층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 - 특정 음식과 상황의 위험성
떡처럼 끈적하고 탄성이 있는 음식은 기도에 밀착돼 제거가 어려워 치명적이기 쉽다. 고기 덩어리처럼 부피가 큰 음식, 빵처럼 마른 음식, 알사탕처럼 단단한 음식도 위험 요인이 된다. 여기에 급하게 먹거나 대화·웃음이 겹치거나, 음주로 반사 기능이 둔화된 상태가 더해지면 사고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
고령층에서는 치아 상태와 의치 착용 여부, 침 분비 감소로 인한 구강 건조, 삼킴 곤란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먹는 방식’ 자체가 안전의 변수로 바뀐다. 중증 질환자나 쇠약 환자는 식사 자체가 큰 에너지 소비가 되는 만큼, 한 번에 많은 양을 빨리 삼키는 습관은 특히 위험하다.
가정에서 지킬 수 있는 예방 원칙
예방의 핵심은 음식의 형태를 바꾸고, 식사 속도와 환경을 조정하는 데 있다. 고령층에게는 떡이나 큰 덩어리 음식은 피하거나 충분히 잘게 썰고, 마른 음식은 수분을 보완해 삼킴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 필요하다. 식사 중에는 앉은 자세를 유지하고, 서두르지 않도록 주변에서 속도를 조절해주는 것이 안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삼킴이 자주 걸리거나 사레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단순 ‘습관’으로 치부하지 말고, 의료기관에서 삼킴 기능 평가와 식이 조정을 상담하는 접근이 권장된다. 방문 돌봄이나 가족 간병이 이뤄지는 가정이라면, 안전 식사법을 생활 규칙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1차 예방책이 된다.
응급처치 - 기도 폐쇄 대응은 ‘하임리히-CPR’까지
기도 폐쇄가 의심되면 먼저 말을 할 수 있는지, 기침이 가능한지, 숨을 쉬는지 확인해야 한다. 스스로 기침이 가능하다면 기침을 유도해 배출을 돕되, 말이 안 나오고 기침이 약하며 청색증이 보이는 등 ‘심각한 기도 폐쇄’로 판단되면 즉시 119에 신고하고 하임리히 처치를 시작해야 한다.
성인과 1세 이상 소아에서 심각한 기도 폐쇄가 의심되면 등을 5회 두드리고, 효과가 없으면 복부 밀어내기(흔히 하임리히법으로 알려진 방법)를 5회 시행하는 방식으로 번갈아 반복하는 것이 표준이다. 이때 입안에 이물이 보이지 않는데 손가락으로 훑어내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깊이 밀어 넣을 수 있어 피해야 한다.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즉시 심폐소생술로 전환해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지속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책적 과제 - 고령사회 ‘식사 안전’의 제도화
기도 폐쇄 예방과 대응은 개인의 ‘상식’에만 맡기기 어렵다. 무엇보다 심폐소생술(CPR)은 대중 인지도가 높고 공공-민간 교육 체계도 비교적 자리 잡았지만, 기도 폐쇄 대응은 ‘하임리히법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는 자신이 없다’는 공백이 여전히 크다. 따라서 장기요양시설, 재가 돌봄 현장, 지역사회 복지관처럼 고령층이 집중된 공간에서 기도 폐쇄 대응을 CPR 교육과 함께 정규 과정으로 묶어 반복 훈련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떡과 같은 고위험 음식에 대한 안내는 명절 캠페인 수준을 넘어, 상시적 안전 교육과 식단 가이드로 연결돼야 한다.
고령사회에서 응급의료 부담을 줄이는 길은 병원 밖에서 시작된다. 식탁에서의 몇 분을 줄이는 교육은 ‘기도 폐쇄는 몇 분 안에 생사를 가른다’는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개입이다. CPR 교육이 ‘심정지 이후’를 대비한다면, 기도 폐쇄 대응은 ‘심정지로 진행되기 전’을 막는 첫 단계다. 결국 현장에서 알고 있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는 공중보건 전략이야말로, 예방 가능한 사망을 줄이는 가장 비용 대비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