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은 2025년 4월 8일 CNN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이 발표한 대규모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한국은 중국처럼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신 “냉정한 협상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겠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미국의 관세 조치와 한국의 대응
미국은 4월 2일,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를 발표하며, 모든 수입국에 최소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불균형이 심한 50개국에는 추가 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은 34%, 유럽연합(EU)은 20%, 일본은 24%, 한국은 25%의 관세율이 책정되었다. 삼성, LG, 현대차 등 미국 시장에 많은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철강·알루미늄과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중복 관세는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
한 권한대행은 “한국은 미국과 매우 강한 동맹 관계에 있으며,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방식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맞대응은 글로벌 교역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의 보호무역 조치가 세계 경제 침체를 초래한 전례를 되새겨야 한다”며, 국가 간 협력과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장 문 닫기 전에 해법 찾을 것”
한 권한대행은 “미국의 조치는 유감스럽지만,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조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통상부 장관을 워싱턴에 파견해 협상에 착수했으며, 냉정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글로벌화는 죽지 않았다. 결코 죽을 수도 없다”며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미국과의 총 교역 규모는 2024년 기준 1,970억 달러에 달하며, 한국은 미국의 여섯 번째 교역 파트너”라고 강조하며, 양국 간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기조와 중국의 대응
트럼프 대통령은 4월 7일, 중국이 34%의 보복관세를 철회하지 않으면 4월 9일부터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중국과의 모든 대화를 취소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을 위한 공정한 협상만이 있을 뿐이며, 다른 나라에는 좋은 협상이 아닐 것”이라고 발언했다. 백악관 무역 고문 피터 나바로 역시 “이건 협상이 아니다”라며 강경한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국은 이에 즉각 반응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 위협은 실수 중에서도 가장 큰 실수”라고 비판하며, “미국이 독자적 길을 고집한다면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보복 관세 외에도, 미국산 농산물(약 150억 달러 규모)을 정조준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으며, 희토류 수출 통제와 생산기지 다변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일본의 방어적 대응 전략
일본은 보다 방어적인 자세로 대응하고 있다. 초기에는 미국에 관세 적용 제외를 요청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자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전국에 특별상담 창구 1,000곳을 설치하고, 자금 지원 및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도 생산지 이전과 조기 출하 등을 통해 대응에 나섰으며, 예를 들어 혼다는 멕시코에서 생산한 차량을 미국 관세 시행 전에 선제 출하했고, 도요타는 가격 인상을 보류한 상태다.
이시바 총리는 자유무역이나 관세에 대한 공개 언급을 피하면서 미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해외 순방에서도 미국과 마찰 중인 유럽이나 캐나다를 피하고, 대신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방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중일 가치사슬의 구조적 한계
미국의 고율 관세는 한중일 세 나라 간 복잡하게 얽힌 가치사슬(벨류체인)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의 대미 수출 제품 상당수는 중국 또는 일본에서 공급되는 부품이나 소재에 의존하고 있으며, 첨단 전자, 자동차, 기계 산업은 국경을 넘는 생산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특정 국가가 타격을 받을 경우, 연쇄적인 피해는 불가피하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와 미중 갈등, 일본과의 경쟁적 관계 속에서 피해를 피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다. 미국과의 협상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가치사슬 전반이 흔들릴 경우 실질적인 회피 전략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부품과 소재의 상호 의존성이 높은 산업 환경에서는 단기 협상만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중장기적인 산업 구조 개편과 외교·통상 전략의 다변화가 절실하다.
특히 한국은 단순히 미국의 시혜적 조치를 기대하며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외교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WTO 체제 아래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려온 국가들이 보호무역 기조로 급선회하고 있는 지금, 한국 역시 새로운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유사한 피해를 입고 있는 중견 무역국들과의 연대는 효과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관세 동맹과 같은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다자간 협상에서 협상의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방적인 구도에 머무를 경우, 한국 산업과 경제는 지속 가능하게 보호받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