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시간 40분’ 토론 뒤 표결은 없었다

필리버스터 뒤 표결 불참, 누가 책임지나

 

어제 25일(월) 본회의 산회 직전, 우원식 국회의장은 “5건의 쟁점 법안에 대해 총 21명의 의원이 103시간 40분 동안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국회법 제106조의2는 소수파의 토론권을 보장하되 지연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그러나 제22대 국회에서 무제한토론이 끝난 뒤 본회의 표결에 제1야당이 일괄 불참해 찬·반·기권의 기명 기록이 남지 않았고, 유권자의 평가 지표가 비었다. ‘토론 뒤 의사표시 의무화’ 등 책임성 강화를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필리버스터 란?  국회법 106조의2

 

필리버스터는 무제한토론으로 2012년 여야 합의로 마련된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장치로 도입됐다. 배경에는 2008년 이후 여야의 극한 대치로 본회의 파행과 ‘날치기’ 논란이 빈발하며 국회 기능이 반복적으로 마비된 상황, 다수당의 일방 처리를 견제하고 소수 의견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요구가 있었다.

일명 ‘동물국회’를 방지하고 공개 토론을 통해 쟁점 법안을 숙성시키겠다는 취지였으며, 이러한 취지에 따라 제도는 법률에 개시·종결·회기 처리 방식이 명문화되어 있다.

 

개시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으로 요구서를 제출해야 하며, 발언은 해당 안건과 직접 관련된 내용에 한정된다. 종결은 종결동의 표결에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종결동의가 제출된 지 24시간이 지나면 표결에 부칠 수 있다. 토론 중 회기가 끝나면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간주되고,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본회의 표결이 진행된다. 무제한토론은 법률안에만 적용된다.

 

결국 이 제도는 소수파의 토론권을 보장하면서도 다수결에 의한 최종 결정을 지연 없이 이어가도록 설계되어 있으나, 표결 참여 자체를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성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무엇이 벌어졌나? 제22대 국회 5건 사례

 

제22대 국회에서 진행된 무제한토론은 총 103시간 40분 동안 이어졌고, 모두 21명의 의원이 발언에 참여했다. 아래 표는 개별 법안별 경과를 추정해 정리한 것이다.

법안명 진행 기간 소요 시간(추정)
방송법 8월 4일–5일 약 31시간
방송문화진흥회법 8월 5일 약 7시간
EBS법 8월 21일–22일 약 24시간
노란봉투법 8월 23일–24일 약 24시간
상법 2차 개정안 8월 24일–25일 약 18시간

표결 불참: 유권자 평가권 공백

 

표결 기록은 유권자가 의원의 정책 성향과 책임성을 판단하는 핵심 데이터다. 필리버스터로 의사일정을 장시간 점유한 뒤 최종 표결에 불참하면 찬반에 대한 명시적 입장이 남지 않으며, 이는 대표성과 공개성 원칙에 비추어 국민에 대한 책무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면 무제한토론은 ‘숙의의 장’이 아니라 정략적 시간 끌기로 인식될 위험이 커진다.

 

이 공백을 메우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무제한토론이 개시된 안건은 종결동의 후 본회의 표결을 반드시 기명으로 실시해 각 의원의 찬·반·기권을 남겨야 한다. 요구서 서명자와 주요 발언자에게는 본회의 표결 참여 의무를 부과하고, 불가피한 결석 사유는 사전 소명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필리버스터 후 표결참여율’과 ‘표결회피율’을 국회와 민간이 정례 통계로 공개해 유권자 평가의 기반을 강화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또한, 아울러 무단 불참에 대해서는 발언시간 배정 감점이나 차기 무제한토론 신청 자격 제한 등 인센티브·디스인센티브를 운영세칙을 정비할 필요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결론 

 

무제한토론은 소수파가 다수파를 견제하는 권리의 정수이지만, 권리의 행사에는 책임이 따른다. 토론 뒤 표결로 입장을 기록하는 설계가 갖춰져야 제도의 정당성이 선명해지고, 유권자에게도 명확한 평가 지표가 제공되는 만큼, 이제 과제는 이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제22대 국회에서 축적된 103시간 40분의 경험은 운영세칙 정비와 ‘토론 뒤 의사표시’ 의무화 등 책임성 강화 논의를 본격화할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