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2월 10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의결을 통해 2027학년도부터 2031학년도까지 5년간 지역·필수·공공의료에서 일할 의사인력을 연평균 668명 규모로 추가 양성하기로 했다. 증원분은 2027년 490명, 2028-2029년 각 613명, 2030년 이후 813명으로 단계적으로 늘리며, 기존 정원인 3,058명을 초과하는 부분은 모두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정원 증감’이라기보다, 지역의료의 구조적 취약성을 ‘인력-교육-재정-분쟁’의 묶음으로 다루겠다는 정부의 정책 설계에 가깝다. 다만 신규 인력의 본격 배출은 2033년 이후로 이어지는 만큼, 단기 공백을 어떻게 버티고 필수의료 기피 요인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정책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5개년 증원 로드맵
보정심이 확정한 5개년 추가 양성 규모는 총 3,342명이며, 이 가운데 2030-2031년에는 공공의대와 지역의대가 각각 100명씩 신입생을 모집하는 구상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 정원은 2027년 3,548명, 2028-2029년 3,671명, 2030년 이후 3,871명 수준으로 늘어나는 그림이 제시됐다.
정책 설계의 전제는 ‘인력 부족분을 2037년을 기준으로 맞춘다’는 접근이다. 보정심은 수급추계위원회의 수요·공급 모형을 바탕으로 2037년 의사인력 부족 규모를 산정하고, 2029년에는 재추계를 통해 증원·감축 여부를 주기적으로 조정하겠다는 원칙도 함께 세웠다.
의사협회의 문제 제기
정부가 2027학년도부터 5년간 연평균 668명 증원을 결정하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오후 6시 의협회관 긴급 브리핑에서 “일방적 의대정원 증원 강행에 따른 의료 붕괴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반발했다. 또한, 교육 여건 검증 없이 정원을 늘리면 의학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핵심 쟁점으로 제기했다.
김택우 회장은 정부가 책임지고 의학교육을 정상화하고, 현장 여건을 반영해 현실적인 모집인원을 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질적인 조정 권한을 가진 의학교육 협의체 구성,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전면 개편, 그리고 필수의료 살리기 대책의 즉각적 실행도 함께 촉구했다.
의협은 2027학년도에 휴학·군 복귀 등으로 교육 대상이 급증할 수 있다며 교육부의 의대 전수조사와 그 결과에 따른 모집인원 재산정을 요구했고, 보정심 회의에서는 결론이 정해진 상황에서 표결 참여의 실익이 없다고 보고 퇴장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적정보상과 유인책,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면책의 법제화 등 제도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왜 지역·필수·공공의료를 전면에 세웠나
정부 제시한 문제의식은 세 갈래다. 첫째는 ‘총량’이지만, 둘째와 셋째는 ‘지역격차’와 ‘필수의료 기피’다. 2025년 말 기준 의사 수는 140,240명, 활동의사 수는 115,748명이며 인구 천명당 2.2명으로 제시됐다. 활동의사 가운데 전문의 비중이 84.9%로 높은 반면, 인턴·레지던트 비중은 8.5%에 그친다는 점은 수련단계의 병목과도 연결된다.
지역격차는 더 직접적이다. 지역별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서울 3.7명에 비해 경북 1.4명, 충남 1.5명 수준으로 제시되며, 의료 공급 불균형이 치료 가능 사망자 수와 건강수명 격차로 이어진다는 지표도 함께 제시됐다. 필수의료 기피는 전공의 충원율 하락으로 드러나는데, 2024년 레지던트 1년차 확보율이 소아청소년과 26.2%, 흉부외과 38.1%, 산부인과 63.4%로 제시됐다.
정책 여건 분석에서는 고령화에 따른 만성·복합질환 수요 증가, 지방소멸에 따른 의료 접근성 악화의 악순환 가능성, 비급여·실손보험 의존 구조가 만든 보상 불균형, 의료사고에 따른 민형사 부담과 소송 중심 분쟁 해결 구조가 필수분야 기피를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정리됐다.
지역의사제 선발
이번 계획의 핵심 정책 수단은 2027학년도부터 도입되는 지역의사 선발전형이다. 정부는 2027학년도 이후 양성 규모 중 2026학년도 모집인원(3,058명)을 초과하는 부분을 지역의사로 선발하겠다고 못 박았다.
지역의사제는 서울을 제외한 9개 권역의 의과대학 소재지에 적용되며, 신입생 선발은 중진료권 모집과 광역 모집으로 구분된다. 의무복무는 선발 당시 고등학교 소재지를 기준으로 10년이 원칙으로 제시됐고, 수련기간은 원칙적으로 의무복무에 산입하지 않되, 의무복무지역에서 지정 과목을 수련하는 경우 산입 규정이 별도로 제시됐다.
정부는 중앙·권역 지역의사지원센터를 설치해 선발-교육-수련-복무-정착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체계를 제시했다. 학생 단계에서는 등록금, 교재비, 실습비, 주거비·식비 등 생활비성 지원을 포함하고, 복무 단계에서는 주거지원, 직무교육, 경력개발, 해외연수 등을 통해 ‘정주’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공의대와 지역의대 - 국가가 직접 키우는 트랙
정부는 2029-2030년을 목표로 ‘국가 주도 최고 수준의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제시했다. 공공의대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심의 실습병원 체계를 축으로 국립암센터·국립대병원과 연계하고, 지방의료원·보건소 실습 등 지역사회 중심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공공의대 졸업자에게는 행정기관(정책) 또는 공공의료기관(임상)에 15년 이상 복무 의무를 부과하는 구상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인턴·레지던트 수련기간을 포함하되 군복무 기간은 제외한다는 조건도 명시됐다. 지역의대는 의대가 없는 지역에 국립 의대를 신설하는 방향이 제시됐으며, 교육병원은 지역 내 기존 공공·민간병원을 우선 활용하는 원칙이 포함됐다.
교육과 수련의 병목 - ‘정원’보다 먼저 ‘교육여건’
정부는 의대 정원 변동이 교육현장의 불안정과 투자계획 조정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별도의 교육여건 개선 전면에 배치했다. 의학교육계 의견수렴 결과를 반영해, 정부는 2027학년도에 한해 증원분의 80%를 먼저 선발해 교육 부담을 분산하고, 24-25학번 휴학생의 2027년 복학 가능성까지 고려해 단계적 확대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40개 의과대학(의전원 1개 포함) 가운데 수도권 13교, 비수도권 27교라는 구조 속에서, 24학년도 기준 비수도권 정원이 66%를 차지하는 점도 함께 제시됐다.
교육여건에 대하여 ‘충분한 교육여건 확충과 투자 불확실성 해소’, ‘지역·필수·공공 인력 양성 지원’, ‘지역 기반 교육 내실화’, ‘24·25학번 교육인원 증가 대응’을 고려 필요사항으로 제시했다. 특히 일부 대학이 수도권 등 타 지역 병원에서 실습을 운영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27학년도 이후 정원 배정에서 주 교육병원 소재지와 실습 비율, 개선계획 제출을 평가에 반영하고 관계법령과 인증기준의 제도개선 추진도 포함됐다.
의협도 같은 지점을 ‘교육의 질’ 관점에서 제기했다. 의협은 교육 가능한 상한선에 대한 평가 기준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교육부의 전수조사를 통해 대학별 수용능력을 투명하게 확인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모집인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24·25학번 중첩에 따른 교육 부담 완화를 위해 교육부 모니터링단과 의대교육자문단, 대학 내 협의체를 통해 분기 단위로 점검·지원하는 체계를 제시했고, 2025년 10월 1일 기준 24·25학번 재적생 7,634명 중 6,048명이 재학 중이라는 현황도 함께 제시했다.
단기 대책 - ‘있는 인력’의 재배치와 업무 방식 혁신
정부는 신규 인력이 본격 배출되기 전까지 단기 대책으로 ‘기존 인력의 유입 촉진과 효율적 활용’을 제시했다. 대표 수단은 5년 이상 장기근무 계약을 전제로 필수과목 전문의의 지역 정주를 유도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다.
시니어 의사 활용도 보완축으로 제시됐다. 대학병원 등에서 퇴직한 숙련 전문의의 공공의료기관·취약지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전일제와 시간제 유형을 구분해 6개월 단위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업 구조가 제시됐고, 지원 기준 완화와 예산 확대도 제시됐다.
의료기관 간 네트워크 진료 활성화, 의료취약지 비대면진료 모형의 시범 도입과 제도화, 지역·공공병원의 AI 기반 진료지원과 행정 효율화 같은 ‘일하는 방식’ 혁신도 단기 처방으로 제시됐다.
재정과 안전망 - 특별회계와 의료사고 대응체계
정부는 인력 양성과 지역필수의료 기반 강화를 위해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신설을 제시했다. 특별회계의 재원은 담배 개별소비세 총액의 55%와 수입용 담배 관세 등을 세입으로 하여 연 1.1조 원 이상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고, 지역필수의료 인력 확충과 진료협력체계 구축, 책임의료기관 지원, 취약지 기반 확충 등으로 세출을 구성하는 구상이 제시됐다.
의료사고 안전망은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안심 진료 여건’이라는 틀로 제시됐다. 중대 의료사고 발생 시 사고 내용과 경위 설명 의무를 부과하되 위로·사과 표현의 재판상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장치, 의료기관 개설자의 배상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와 보험료 국가지원 근거 마련, 조정제도 개선과 형사절차 개선 같은 패키지가 포함됐다.
숫자를 넘어 -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로 가는 실행 설계
이번 결정은 ‘지역에 남는 의사’를 제도적으로 만들겠다는 점에서 과거의 단순 증원 논의와 결이 다르다. 지역의사제의 10년 의무복무, 공공의대의 15년 복무 의무, 지원센터를 통한 전주기 지원, 그리고 교육여건 개선과 특별회계 신설, 의료사고 안전망까지 결합한 설계는 정책 수단을 한 패키지로 묶었다.
그럼에도 정책의 실효성은 결국 정주 조건과 진료 여건, 그리고 필수의료의 보상 구조가 동시에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수련과 근무가 수도권 대형병원에 집중되는 경로가 유지되는 한, 정원 증가는 지역으로의 이동을 자동으로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제시한 지역 기반 실습의 실효성 제고와 협력수련의 정착이 실제 현장 규칙으로 이어지는지가 1차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정원은 출발점이고,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는 도착점이다. 2027년부터 시작될 단계적 증원이 지역·필수·공공의료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인력의 유입을 촉진하는 단기 수단과 교육·수련의 병목을 푸는 투자, 그리고 의료사고 분쟁과 보상 불균형을 다루는 구조개혁이 하나의 시간표로 맞물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