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3040에게 정말 불공정한가?

 

장기화되는 고령사회 속, 국가가 보장하는 연금이야말로 마지막 안전망이다. 급속한 저출산과 평균 수명 증가로 인해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가 노후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은 단순한 소득 보장을 넘어, 국가 공동체가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 사회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 개혁안이 1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는 단순한 제도 조정이 아닌,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고령화 문제에 대한 첫 번째 본격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상향하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가 연금 지급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조항이 신설되어, 그간 국민들 사이에 팽배했던 ‘고갈 불안감’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개혁안 통과 직후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국민의힘 김재섭, 개혁신당 이주영,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개혁신당 천하람,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국민의힘 우재준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성세대만 이득을 보고, 청년세대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불공정한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30~40대 여야 의원들은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연금소득세의 국민연금 전환 등을 주장하며 ‘청년 부담론’을 강조했다. 하지만 과연 이번 개혁안이 정말로 청년세대만의 희생을 전제로 한 일방적인 구조일까? 보다 입체적이고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자동조정장치? 연금 삭감이 자동화되고, 예측 가능한 노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위험한 제도

 

일부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자동조정장치(automatic adjustment mechanism)'는 겉보기에 중립적이고 체계적인 구조로 보일 수 있다. 연금 재정이 악화되면 정치적 논의 없이도 급여 수준이나 보험료율을 자동으로 조정하여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 스웨덴 등에서 이미 그 부작용이 확인된 바 있다.

실제 일본의 ‘매크로 슬라이드’는 수명 연장과 인구감소를 반영해 연금을 실질적으로 감액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이로 인해 노인들의 연금 실질가치는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생계 유지조차 위협받고 있다. 스웨덴 또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자동조정장치가 작동되며 수급액이 대폭 줄었고, 그 결과 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 불신이 심화되었다.

자동조정장치의 핵심 문제는 단순한 연금 삭감이 아니라, 그 삭감이 예고 없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연금은 장기적인 노후설계의 핵심 기둥이며, 안정적인 수급 예측은 개인이 은퇴 후 삶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자동조정장치는 이 예측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며, 국민연금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국가의 노후 책임'을 약화시킨다. 퇴직을 앞둔 세대가 계획했던 주거, 건강, 소비 계획이 무력화되며, 불안과 불신은 급격히 확산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장수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국가에서 자동조정장치가 작동될 경우, 수명이 늘수록 연금은 계속 깎이게 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연금은 공적 안전망이라기보다 “기계적 감액 시스템”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이 안심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신뢰 기반 제도’이지, 알고리즘처럼 일방적으로 작동되는 조정장치가 아니다.


모수개혁은 불가피한 선택… 그리고 결코 불공정하지 않다

 

연금재정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태다. 보건복지부 및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2055년경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금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점부터는 매년의 수입(보험료 등)만으로 연금을 충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령인구의 급증과 경제성장률 둔화, 낮은 출산율까지 고려하면,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이후 세대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개혁은 단순한 ‘부담 증가’가 아니라, 균형 있는 조정을 통한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험료율은 현재의 9%에서 2033년까지 13%로 인상되며, 급격한 인상이 아닌 단계적 조정 방식이 채택됐다. 동시에 소득대체율을 43%로 상향함으로써, 연금 수급의 실질 보장 수준도 개선됐다.

더 나아가 이번 개정안에는 청년세대와 직결된 긍정적 요소들이 포함되었다. 군복무 크레딧은 최대 12개월까지 확대되었고, 출산크레딧도 첫째 자녀부터 적용되며 기존보다 확대되었다. 이는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복무나 육아를 수행하는 30~40대 세대에게 직접적인 혜택으로 돌아가는 조치다. 단지 부담만 지우는 구조가 아니라, 책임과 보상의 균형을 맞춘 결과물인 것이다.


"세금으로 국민연금 메운다?"…이미 정부는 그렇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결국 세금으로 메우자는 것이냐”는 비판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 제도 운영의 실태를 간과한 주장이다. 이미 정부는 기초연금이라는 형태로 고령층에게 국가 예산을 통해 일정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매달 최대 40만 원까지 지급되며, 연간 20조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저소득 고령자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지원받고 있다. 이처럼 이미 세금 기반의 다양한 노후보장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국민연금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국고 보조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재원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운영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사각지대 발생 이후 뒤늦게 예산을 쏟아붓는 방식보다, 사전에 제도를 정비하고 공적 연금의 신뢰를 높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책임 있는 접근이다.


 국민연금만이 가능한 ‘장수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헤지

 

많은 이들이 ‘연금보다 개인 저축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오해다. 사적연금이나 저축성 보험 상품은 대부분 일정한 기간 이후에는 소진되며, 물가 상승이나 수명 증가에 대응하지 못한다. 또한 관리운영비 측면에서도 사적연금은 수수료와 판매보수 등을 포함해 연평균 약 1% 내외의 비용이 발생하는 반면,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 대비 운영비 비율이 0.1% 수준에 그쳐 훨씬 효율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2024년 계획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관리운영비는 약 568억 원이며, 이는 전체 기금 대비 약 0.05%에 불과하다. 사적연금은 보통 정액제가 대부분이고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자산 증식 효과는 매우 낮다. 게다가 종신형 상품은 많지 않고, 금융 시장 변동에 따른 원금 손실 가능성도 존재한다. 금융감독원 및 한국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연금저축의 최근 5년간(2018~2022) 수익률은 신탁형 1.08%, 펀드형 0.59%, 생명보험사 1.89%, 손해보험사 1.64%로 나타났다(출처: 한국보험연구원 세미나자료, 2024).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사적연금은 사업비 구조상 가입 초기 10년간 10% 이상의 사업비가 부과되며, 이후에도 1% 수준의 운영비가 지속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연합뉴스, 2014).

반면 국민연금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죽을 때까지 평생 지급되는 종신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특히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수익률 측면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 왔으며, 1988년~ 2024년 기준 평균 기금운용 수익률은 약 6.82%에 달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속에서도 중장기적 투자 성과를 통해 국민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증대시킨 결과다. 또한 연금액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인상되므로, 실질 구매력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장수 리스크와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가장 강력한 노후위험을 동시에 헤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공 장치다. 개인이 아무리 재정 계획을 잘 세운다 해도, 90세 이상까지 살아가는 초고령 시대에는 국민연금 없이 안정된 노후는 보장받기 어렵다.


국민연금, 단순한 연금 그 이상

 

국민연금은 단순히 노후 소득을 제공하는 제도가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국민연금은 노인들의 생계 안정뿐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노인범죄 예방, 가족 간 부양 갈등 감소, 지역사회 의료비 절감 등 광범위한 사회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계량화하기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공공적 가치다.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운영될수록, 자녀 세대의 부담은 줄어들고, 노후 세대의 존엄도 보장된다. 사회 전체의 신뢰와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로서, 국민연금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세대 갈등이 아니라 세대 연대

 

이번 국민연금 개혁은 특정 세대만의 부담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지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조치다. 보험료율 인상은 단계적이며, 소득대체율 인상과 군·출산 크레딧 확대 같은 보상 조치도 병행되었다. 연금소득세의 국고 전환이나 연금특위 내 3040세대 비중 확대 등의 보완책도 이미 논의 중이다.

이제는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연금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기대게 될 제도이며, 그 가치를 지켜내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지금의 개혁이 바로 그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