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방의료원 만들어야? 대통령 타운홀 미팅 여파

울산의 공공의료원 설립 논의가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을 계기로 다시 전국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지역의 오랜 숙원과 재난 대응이라는 공공의료의 필요성이 재확인되는 동시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와 재정 분담, 운영 인력 확보 같은 구조적 장벽이 현실적인 한계로 드러나면서 ‘지방 주도-중앙 협력’의 정책 모델을 어떻게 구체화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울산의 마음을 듣다’ 자리에서 울산 지역 대학병원 전문의로 자신을 소개한 양홍석 씨는 “인구 110만 명 도시인데 국립대병원-의료원-공공종합병원이 없다”고 강조하며, 고위험 산모와 소아 환자의 타 지역 이송 현실을 거론했다. 그는 25년 숙원으로 불리는 울산의료원 건립을 위해 예타 면제 등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공공의료 확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책의 주체는 울산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앙정부가 특정 지역만 예외로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울산의 재정 여건을 언급하며 우선순위 논리를 편 발언도 이어지면서, 이후 지역 시민단체와 야권을 중심으로 ‘공공의료 약속 후퇴’라는 비판이 확산했다. 반대로 ‘지방이 주도하고 국가는 기준과 재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반론도 맞물리며 논쟁은 울산 지역 현안을 넘어 공공의료 확충 방식 전반으로 번졌다.


공공의료원, 재난 대응과 지역 불균형 해소 열쇠

 

지역 공공의료원의 존재 이유는 감염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 특히 분명해진다는 평가가 많다. 공공병원은 위기 시에 의료 체계를 떠받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러한 기능은 평상시 수익으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동률’ 같은 지표만으로 평가하면 구조적으로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당시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된 34개 지방의료원에 손실보상금이 지급됐다고 설명하며, 공공병원이 재난 대응에서 맡는 역할과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제도적으로 보전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위기 대응을 공공의료의 핵심 기능으로 인정한다면, 운영의 성과 기준 역시 단기 수익성뿐 아니라 지역 보건 안전망의 기여도를 함께 반영하도록 제도 설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평시에도 공공의료원은 시장 논리로 공급이 얇아지기 쉬운 분야를 떠받치는 안전망 성격이 강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응급, 감염, 정신건강 등 인력과 장비 부담이 큰 진료는 민간이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지역이 생기기 쉽고, 공공병원은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 확보와 지역 보건사업을 결합해 지역 돌봄망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건립 지연 배경… 적자 재정·예타 장벽에 발목

 

공공의료원 신설과 확장이 더딘 배경으로는 ‘필요와 수지의 불일치’가 반복적으로 지목된다. 공공성이 강한 기능은 상시 인력과 시설 비용이 크지만 건강보험 수가만으로 손익을 맞추기 어렵고, 초기 투자비도 크게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의사-간호사 등 필수 인력 확보 난도가 지방일수록 높아 ‘지어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사업 추진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해관계의 충돌 역시 현실적인 장애물로 꼽힌다. 기존 민간병원과 지역 의료계, 주민 여론이 맞물리면서 공감대가 있더라도 사업 규모, 부지, 재정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지기 쉽다. 공공의료를 둘러싼 갈등이 단순한 찬반을 넘어 ‘어떤 기능을 어떤 규모로, 어떤 재원 구조로’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는 이유다.

 

울산의료원은 이러한 구조적 난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울산시는 2021년께 의료원 추진 계획을 내놓고 관련 절차를 진행해 왔지만, 정부의 예타-타당성 재조사 과정에서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이후 규모 조정과 대안 논의가 반복됐다. 지역에서는 ‘공공병원을 경제성 중심 평가로만 걸러내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와 ‘재정이 비교적 탄탄한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공적인 해외 사례: 중앙과 지방의 협력

 

해외 사례를 들며 중앙 책임과 지역 설계를 결합하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잇따른다. 덴마크는 5개 지역이 병원 진료를 계획-제공하고 병원을 소유-운영하는 구조로 알려져 있고, 스웨덴은 21개 지역이 의료서비스 책임을 지며 290개 기초지자체가 노인-장애인 주거시설 등과 연계된 보건의료를 맡는 체계를 갖췄다고 소개된다. 공통적으로 지역이 운영 주체가 되되 국가 차원의 규칙과 재정 조정이 함께 작동하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일본은 민간병원 비중이 큰 체계 속에서도 지자체 공립병원을 안전망으로 유지해 왔지만, 재정 부담이 커지자 2007년 전후 공립병원 개혁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능 재정렬과 경영 개선을 요구하는 흐름이 강화됐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공공병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역할을 명확히 하고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 논의가 진화해 왔다는 시사점이 읽힌다.


울산 의료원 논쟁이 던진 정책 과제

 

국내 제도 역시 설립 주체는 지방에 두면서 국가가 감독-지원하는 틀로 설계돼 있다.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료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이사회 등 운영 체계를 두도록 하고 있다. 결국 쟁점은 중앙과 지방의 책임 공방을 반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역이 필요에 맞는 공공-민간 조합을 설계하되 중앙정부가 재정 지원의 원칙과 필수 기능 기준, 성과 지표를 정교하게 마련해 혁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울산 사례가 전국 의제로 확장된 것은 공공의료가 단일 시설 건립을 넘어 ‘지역 의료의 최소 기준’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타의 문턱과 운영 적자 우려, 인력 확보 난제를 그대로 둔 채 건립만 강행하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반대로 경제성 잣대에만 맡기면 필수의료의 공백과 지역 불균형이 고착될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재확인됐다.

 

정책적 해법은 지방의 선택과 책임을 전제로 하되, 중앙정부가 예외적 면제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 대신 ‘어떤 기능을 공공이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가’라는 기준을 먼저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감염병, 응급, 분만, 소아 같은 기능을 어디까지 공공 책임으로 보고 재정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뒷받침할지, 그리고 그 성과를 어떤 지표로 평가할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뒷받침될 때 울산의료원 논쟁도 ‘후퇴’와 ‘특혜’의 프레임을 넘어 제도 개선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