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등을 인정해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사법부가 12·3 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한 첫 판단이 나오면서,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한 단죄와 사면권 행사가 충돌할 때 어떤 통제 장치가 필요한지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사면처럼 ‘국민 통합’ 명분이 사법적 단죄를 단기간에 약화시킨 전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 판결은 사면권을 둘러싼 제도 논쟁을 다시 과거의 경험 위로 소환했다.
사면은 역사적으로 국가원수의 은사권에서 출발해, 오늘날에도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법원이 확정한 유죄 판단을 행정부 수반의 결단으로 뒤집는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사법권 독립과 긴장 관계를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내란·반란 같은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해서도 현행 사면법이 특별사면을 명시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면권, 권력분립의 예외가 되는 순간
헌법은 대통령에게 사면·감형·복권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사하도록 규정한다.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를 요구하지만, 특별사면은 국회 동의 없이도 가능하되, 법무부장관 소속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상신하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뒤 대통령이 재가하는 절차로 진행돼, 현실적으로 대통령 권한이 집중되어 왔다.
사면법상 특별사면은 원칙적으로 ‘형의 집행’을 면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형 선고의 효력 자체를 상실시키는 방식까지 가능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사면의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내란·반란은 공소시효를 없앴는데…사면 제한은 비어 있다
내란·반란은 일반 형사범죄와 달리 국가의 존립과 헌법 질서를 직접 겨냥하는 범죄로 분류된다. 형법은 내란죄를 ‘국토 참절 또는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으로 규정하고, 군형법은 반란죄를 군인의 작당·무장 반란으로 규정해 법정형을 극히 무겁게 설계했다.
1995년 제정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은 내란·외환과 반란·이적 등을 ‘헌정질서 파괴범죄’로 묶고,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그럼에도 사면을 제한하는 조항은 별도로 두지 않아, “끝까지 처벌”이라는 입법 취지가 사면권 행사 한 번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구조적 모순이 남는다.
사면 이후 ‘반성 없는 복귀’가 남긴 상처
이 긴장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대법원은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 노태우에게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9600만 원을 확정했지만, 확정 판결 이후 8개월 만에 특별사면과 복권이 단행됐다.
당시 사면은 ‘국민 대화합’과 경제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법원이 확정한 단죄가 정치적 결단으로 단기간에 약화됐다는 비판도 거셌다. 이후 사면이 “예외적 권한”이 아니라 “정치적 카드”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도 논쟁의 출발점이 됐다.
사면과 복권이 곧 ‘과거의 유죄 사실’까지 지우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전직대통령 예우 관련 법률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예우를 제한하도록 두고 있어, 특별사면과 복권이 있어도 연금·비서관 지원 등 예우가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는 구조다.
그럼에도 사면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이 피해자와 국민 앞에서 충분한 사과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르며, ‘면죄부’ 논란은 더 커졌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건강 문제를 이유로 재판 출석이 어렵다던 시기에 골프장 라운딩 모습이 포착돼 ‘자숙 없는 사면’이라는 비난을 키웠고, 12·12 군사반란 40주년 당일에는 쿠데타 핵심 인사들과 식사 자리를 가진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 공분을 샀다. 사법적 단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상으로 복귀한 듯한’ 행보가 반복적으로 부각되면서, 사면이 국민 통합이 아니라 분노를 키우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전례가 누적되면서, 국회는 사면권 행사에 제동을 거는 제도 손질 논의를 본격화했다.
사면법 손보는 국회…‘금지’와 ‘통제’ 사이
이 같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22대 국회에서는 ‘사면법 개정’이 연쇄적으로 발의됐다. 2024년 말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개정안들의 공통점은,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해 ‘특별사면의 단독 결단’을 그대로 두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첫 흐름은 사면 대상을 법률로 좁히는 ‘대상 제한’이다. 곽상언 의원안은 내란·외환을 사면·감형·복권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민형배 의원안과 한병도 의원안은 내란·외환에 더해 군형법상 반란까지 포함해 ‘헌정질서 파괴자’의 사면·감형·복권을 전면 제한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권향엽 의원안은 한발 더 들어가 내란 ‘우두머리·중요임무 종사자’와 반란 ‘수괴·중요임무 종사자’에 대해서는 특별사면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 신설을 담았다.
다른 흐름은 ‘전면 금지’ 대신 제도 설계를 통해 사면을 어렵게 만드는 ‘절차적 통제’다. 이강일 의원안은 특별사면의 범위와 절차를 제한하고, 사면심사위원회 구성·절차를 손보는 한편 국회의 통제 수단을 도입해 사면권 행사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현재 특별사면은 법무부장관 소속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지만, 심사 의견이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지 않는 구조다. ‘대상 제한’이든 ‘절차 강화’든, 국회 논의의 초점은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한 사면 제한과 밀실성을 손보는 데 맞춰져 있다.
사면은 예외로 남아야 한다…국회가 통제장치를 세울 때
사면권을 법률로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는 결국 ‘대통령의 고유권한’과 ‘법치주의의 통제’가 어디에서 균형을 이루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내란·반란처럼 헌법 질서를 겨냥한 범죄에서까지 특별사면을 사실상 대통령 결단에 맡겨두는 구조는, “끝까지 처벌”을 선언한 특례법의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덕수 선고를 계기로 논쟁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사법부가 12·3 계엄을 내란으로 판단한 이상, 이후 정치권의 ‘통합’ 프레임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면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은 ‘사면을 하지 말라’는 선언이 아니라, 사면이 정치적 거래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제도다.
국회 논의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내란·외환·반란을 사면·감형·복권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최소한 수괴·중요임무 종사자급 중대 범죄에 대해 특별사면을 금지하자는 ‘대상 제한’이다. 다른 하나는 국회 동의, 심사기구의 독립성 강화, 공개성 확대 등 ‘절차적 통제’를 통해 대통령의 단독 결단을 어렵게 만들자는 접근이다.
현실적 관건은 ‘위헌 논란’을 줄이면서도 실효성을 확보하는 조합을 찾는 일이다. 내란·반란 사면에 대한 명시적 제한, 국회 통제의 도입, 심사위원회의 독립성과 투명성 강화가 함께 작동할 때, 사면은 비로소 예외적 권한으로 남고 헌정질서 수호라는 원칙도 흔들리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