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보도에서 초고도정제식품(초가공식품·UPF)의 건강 위험을 다뤘다. 이번에는 우리 식탁에 숨어든 초가공식품의 실체, 구별법, 그리고 ‘개인 책임’의 한계를 짚는다.
라면·과자만이 아니다…‘건강해 보이는’ 초가공이 더 위험하다
초고도정제식품은 단순히 조리된 음식이 아니다. 원재료를 해체한 뒤 첨가물과 공정기술로 맛과 식감을 설계해 다시 조립한, 공산품에 가까운 식품이다. 라면·탄산음료·과자처럼 전형적인 제품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은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제품에서 드러난다. 시리얼, 가당 요거트, 샌드위치 햄, 시판 소스, 편의점 도시락은 균형 잡힌 식사처럼 보이지만, 성분표를 들여다보면 다른 결론에 닿기 쉽다. ‘영양 강화’라는 문구 뒤에 설탕과 고도 가공이 함께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빠르게 늘어난 단백질 강조 제품도 같은 맥락에서 점검이 필요하다. 프로틴 바와 프로틴 음료는 ‘운동용’ ‘다이어트용’ 이미지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감미료·향료·유화제 등 초가공 성분이 다수 포함될 수 있다.
성분표로 걸러내라?…현실은 ‘읽기 어렵고 선택지도 없다’
소비자가 초가공 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손쉬운 출발점은 성분표이며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성분표가 유난히 길고(예컨대 10줄 이상), 말토덱스트린·산도조절제·유화제·향미증진제처럼 집에서 잘 쓰지 않는 용어가 반복되며, 원재료의 모습은 사라진 채 분말·반죽·바 형태로 남아 있다면 초가공식품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신호가 하나라도 보인다면 한 번 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매장에서 “성분표를 읽어라”는 조언은 금세 힘을 잃는다. 제품을 하나하나 비교해 고르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고, 낯선 용어는 판단을 더디게 만든다. 무엇보다 초가공이 아닌 대체품은 가격이 더 비싸거나, 아예 선택지 자체가 거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소비자는 ‘피하고 싶어도 피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떠밀리게 된다.
소비자의 초가공식품 대처…그러나 ‘버티기’일 뿐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도 분명 있다. 라면을 완전히 끊기 어렵다면 조리 방식을 조금만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컨대 멸치·채소 육수에 면을 삶고 스프는 절반만 넣는 식으로 간과 첨가물 부담을 낮춘다. 탄산음료는 무가당 탄산수나 차로 바꿔보고, 시판 드레싱 대신 올리브유와 레몬즙처럼 재료가 단순한 조합을 활용하면 불필요한 첨가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편의점 식사라면 ‘구성이 단순한 조합’을 우선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도시락 대신 샐러드와 달걀, 과일처럼 재료 구성이 분명한 선택을 고르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이런 전략은 어디까지나 방어적 선택에 가깝다. 매일 비교하고 조정하며 ‘피해 가는’ 방식은 근본 해법이라기보다 버티기에 가까운 한계를 안고 있다.
식품기업의 ‘행복점’ 공략…개인의 의지만으론 게임이 안 된다
식품 산업은 설탕·지방·나트륨을 정교하게 배합해 소비자가 멈추기 어려운 맛을 겨냥한 행복의 맛을 설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한 번 먹으면 더 당기고, 다시 찾게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광고와 판매 전략이 결합된다. 할인과 묶음판매, 편의점 진열, 배달앱 추천이 동시에 작동하며 선택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 사회 구조 역시 이 흐름을 강화한다. 맞벌이, 장시간 노동, 돌봄 부담, 1인 가구 증가가 겹치면서 “직접 요리해 먹어라”는 말은 점점 더 공허해진다. 문제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개인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환경 자체에 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표시·광고·공공급식이 핵심
초가공식품 문제를 개인에게만 맡기는 접근은 한계가 뚜렷하다. 오히려 개인이 불리한 게임에 홀로 참여하는 모양새가 되기 쉽다. 그래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선 성분표를 ‘읽기 쉬운 정보’로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작은 글자가 빽빽한 방식만으로는 소비자가 판단하기 어렵다. 핵심 정보가 전면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제품 전면에 초가공 여부를 알리는 표시를 논의할 필요도 있다. 식품이 ‘선택의 결과’라는 말 뒤에 숨어버리지 않도록, 위험을 더 명확히 알리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아동·청소년을 겨냥한 과도한 광고와 마케팅도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입맛이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설계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공공급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학교와 공공기관 급식에서 최소가공 식재료 비중을 늘리면, 시장도 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초고도정제식품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개인의 절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섭취를 줄이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어도, 피하려 해도 피하기 어려운 구조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개인의 의지’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식환경을 바꿀 것인가.’ 미래 세대의 건강은 더 이상 개인의 결심만으로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 있게 다뤄야 할 정책 과제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