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보도] ‘입맛을 설계하는 공장 식단’...초고도정제식품, 건강위험은 성분표 안에 숨어

겉모습만으로는 구분 어려워 - 표시제와 식품환경 재설계가 정책 과제

 

새해가 되면 금연, 절주, 운동 같은 결심이 반복되지만, 건강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변수는 일상 식탁에서 ‘피해야 할 음식’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짜고 맵고 기름진 음식을 줄여야 한다는 상식은 널리 알려졌지만, 직접 요리하기보다 사 먹는 비중이 커진 환경에서는 그 상식만으로는 위험 신호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커진다.

 

학계가 주목하는 키워드는 ‘초가공식품’이다. 초가공식품은 초고도정제식품(UPF, ultra-processed foods)으로도 불리며, 겉보기에는 간편식이나 일상식에 가깝지만 성분과 제조 공정의 관점에서 보면 산업적으로 조합된 원료와 첨가물이 핵심이 되는 식품군을 뜻한다. 문제는 이 범주가 낯선 용어일 뿐, 실제로는 우리 곁에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무가당 플레인 요거트와 달리 과일향, 과당, 정제당을 사용한 과일 요거트가 그렇고, 유화제, 보존제, 산도조절제, 설탕, 쇼트닝이 포함된 마트와 편의점의 식빵도 그렇다. 섬유질과 단백질보다 당과 정제 전분 비중이 큰 시리얼(아침용 콘푸레이크, 그래놀라 일부), 고기 비율은 낮고 전분, 식물성 단백, 아질산염을 포함한 소시지와 햄도 ‘간편한 단백질’로 포장되지만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의 대상에 포함된다.


초가공식품 연구들이 제시한 위험 신호들

 

초가공식품의 위험성은 ‘느낌’이 아니라 대규모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된 결과라는 점에서 정책적 함의가 크다. 영국 의학저널(BMJ)과 Lancet 등에 실린 대규모 메타 분석들은 초가공식품 섭취가 심혈관 질환, 제2형 당뇨병, 비만, 수면 장애, 불안 및 우울증 등 32가지 질환 위험을 높인다고 보고했다. 또한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이 10퍼센트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전반적인 사망 위험이 약 3-10퍼센트가량 상승한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또한,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등에 실린 연구들은 특정 초가공식품이 뇌의 보상 체계를 자극해 코카인이나 담배와 유사한 수준의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도 포함돼 있다. 이런 문제 제기는 초가공식품이 단지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아니라, 소비를 반복시키도록 설계된 식품 환경과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판별 질문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집에서 같은 맛을 만들 수 있는지, 원재료보다 첨가물 목록이 더 긴지, 씹는 시간 대비 포만감이 낮은지, ‘무슨 맛’만 강조될 뿐 실제 재료가 아닌지 같은 질문에서 두 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초가공식품 가능성을 의심하라는 조언이 나온다.

 

현실의 문제는 두 갈래다. 첫째, 마트에서 파는 포장식품은 원재료명과 영양성분표를 확인하면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번거롭고 소비자에게 사실상 ‘해석 노동’을 요구한다. 둘째, 외식과 배달은 원재료와 첨가물 정보를 확인하기가 더 어렵고, 설명이 부실하거나 아예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위험 노출을 개인이 감당하기가 한층 힘들어진다.


NOVA 분류가 던지는 정책적 메시지

 

NOVA 분류체계는 식품을 영양성분이 아니라 ‘가공의 정도와 목적’으로 분류하는 체계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 연구진은 2009년 학술지 공중보건영양학(Public Health Nutrition)에서 “영양의 핵심 변수는 영양소가 아니라 가공(processing)”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초가공(ultra-processing)’ 개념을 제시했고, 이후 4개 그룹 분류로 정리되며 널리 확산됐다.

이 분류는 식품을 비가공-최소가공(그룹1), 조리용 가공원료(그룹2), 가공식품(그룹3), 초가공식품(그룹4)으로 나눈다. 초가공식품은 정제 전분, 당류, 유지 같은 원료에 향료, 유화제, 안정제, 감미료, 착색료 같은 첨가물을 결합해 대량 생산한 제품을 가리키며, 이름만 보면 ‘새로운’ 분류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현대 식품 산업의 구조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자료를 이용한 연구도 NOVA를 적용해 초가공식품 섭취 수준을 추정해왔다. 2016-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24시간 회상법) 기반 분석에서 한국 성인의 하루 섭취 열량 중 평균 25.1퍼센트가 초가공식품에서 나왔고, 초가공식품 비중이 높을수록 총열량, 총당류, 포화지방 섭취가 늘며 식이섬유, 미네랄, 비타민 섭취와 식사질 지표는 낮아지는 경향도 보고됐다.


‘건강 간식’으로 위장한 초가공식품의 함정

 

초가공식품은 ‘라면, 햄버거, 탄산음료’처럼 전형적인 사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치즈 스틱, 달콤한 빵류, 과일 이미지를 내세운 가당 발효유와 요거트, 젤리와 구미, 즉석죽, 즉석국물류, 햄과 소시지, 믹스커피처럼 간식 또는 간편식으로 소비되는 제품 가운데도 원재료명에 설탕이나 시럽(과당 등), 정제 전분, 식물성 유지, 각종 첨가물이 다수 포함된 경우가 있다.

같은 품목이라도 브랜드와 제품에 따라 조성이 달라 ‘겉모습’만으로 일괄 판단하기는 어렵고, 결국 원재료명과 영양성분표 확인이 사실상 유일한 판별 수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초가공식품 문제는 개인의 선택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정보 제공과 식품 환경 설계를 포함한 공적 개입이 필요한지로 논점이 이동한다.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이유 - 개인 선택만으로는 한계

 

 

영양학자들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 통곡물, 생선과 육류 원물을 중심으로 식사를 구성하면 자연스럽게 초가공식품 섭취가 줄어든다고 조언하지만, 실생활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원재료명과 영양성분표를 확인해 설탕, 과당, 낯선 첨가물을 점검하는 방식이 권장되지만, 시간과 비용, 정보 해석 부담이 동시에 작동해 실천 장벽을 높인다.

 

조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손질된 신선 식재료나 냉동 채소처럼 가공 수준이 낮은 대안을 찾을 수 있지만, 이런 대안이 초가공식품에 비해 더 비싸다는 현실도 선택을 제약한다. 외식이나 배달에서도 튀김 위주 메뉴보다는 비교적 단순한 조리 방식의 음식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미 소금과 설탕 등 다양한 첨가물에 익숙해진 입맛이 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이처럼 초가공식품을 줄이자는 권고는 개인의 결심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성분 정보의 비대칭, 시간과 비용의 제약, 외식-배달 환경까지 겹치면서 ‘덜 가공된 선택’을 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법의 무게중심은 개인에게만 맡기기보다, 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건강한 선택이 가능해지도록 식품 환경의 접근성을 함께 높이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정보’와 ‘접근성’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초가공식품을 피하라는 권고는 ‘개인의 절제’로 쉽게 환원되지만, 정책의 언어로 옮기면 핵심은 정보 비대칭과 접근성 격차를 줄이는 문제로 수렴한다. 소비자가 성분표를 읽고 해석해야만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구조라면, 그 부담은 시간과 교육, 소득이 부족한 계층에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초가공식품이 일상적 선택지가 된 현실에서, 사회가 논의해야 할 책임의 범위는 개인을 넘어선다. 식품 표시의 실효성을 높이고, 외식과 배달 영역에서도 기본 정보가 제공되도록 하며, 가공 수준이 낮은 식재료를 ‘선택하기 쉬운 가격과 형태’로 만드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뒤따른다.